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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성
    Coffee 2007. 2. 21. 03:06
    아주 옛날 대학교 선교단체에 있을때 선배들이 늘 하던 말이 있다. 움직이는 자와 함께 움직이라는 말이였다. 그당시에는 진실 처럼 들렸다. 아니 진실이었다. 어떤 모임에든 5% 만 움직인다. 그 5%안의 사람들과 같이 움직이라는 말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타당성이 있는 말이다.

    하지만 살면서 느껴지는 것은 사람들은 자신이 추구했던 방식을 잘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껏 살아 오면서 익숙해져 있는 것을 계속 추구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예외일 수 없다. 쉽게 새로운 영역으로 새로운 곳으로 뛰어들지를 못한다. 하지만 지위에서 평등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는 좀더 복잡하다. 난 쉽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 아버지는 늘 나에게 고집을 꺽어라고 말씀하셨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모이지 않는다고 말이다. 아내도 나에게 그렇게 이야기한다. 내 생각이 다 옳다고 믿지마라고....

    그렇게 되지 않을려고 무던히 노력한다.

    관성이다. 고립계에 있는 물체에 외부에서의 힘이 주어지지 않으면 그 물체는 이전 운동상태를 유지하려는 것. 인간은 누구나 관성이 있다. 하지만 한가지 다른 것은 인간이 사는 세계는 고립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무한의 상호작용을 가지는 시공간에서 산다.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무수한 유형, 무형의 존재와의 상호작용을 가진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최소한의 상호작용이 아닐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도움을 요구하거나 나에게 부탁을 하거나 어떤일을 내게 해라고 명령하는 사람들 중에 내가 제시한 해답, 해결책 도움을 무시하는 사람들이다. 항상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 왜 내게 요구했는가? 왜 나에게 부탁을 했는가? 왜 내게 명령(?)을 내렸는가? 그들은 내가 하는 방식이 마음에 안든다는 표정을 만들듯이 나는 그들이 하는 방식이 마음에 안든다.

    분명 어떤 분야는 내가 더 많이 안다. 그 분야에서 그들이 갖혀 있는 관념을 탈피하기 위해 제시한 해답들은 그들은 어렵다. 이해가 안된다는 표현으로 무시를 한다. 최소한의 내가 사용하는 시간들. 그들을 이해시키기위해 그들에게 더 나은것이 무엇인지 그들에게 좀 더 편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사용하는 내 시간. 시간에 대한 보상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상호 존중이다. 공명이다. 최소한의 몸짓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 것 만큼 그들도 노력을 해달라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움직이는 5%와 함께 움직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것은 나머지 95%를 고립시켜 버리는 행위이다. 각각 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해 조금씩의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면 결국 100%가 함께 움직이는 것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것은 이상이다. 현실에서 결코 생길 수 없는 100% 허구의 세상이다.


    상호작용하지 않는 그들을향한 내 마음을 고이 접어, 지갑에 넣고 하루를 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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